나의 이야기

6.2

무슈샹베르탱 2010. 6. 2. 22:41

#

  후찌's 데드.

 

  엉아로서 잘 해 준 것도 거의 없다.

 

  이제 놈이 집에 없다는 게 실감이 조금씩 나기도 하고...

 

 

##

 손에 땀을 쥐며 명박이형을 응원하고

 

 불과 1년 반만에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의 비명횡사에 눈물을 쏟는

 

 근시안적인 유권자인 나.

 

 후광 김대중 선생을 무조건적으로 존경하는 전라디언이나(호남 폄하 발언이 절대 아님.)

 

 국부 다까끼 마사오를 찬양하는 똘아이들보다는 그래도 깨어있다고 생각하는데..

 

 모르겠다.

 

 

###

이제껏 태국을 빼면

 

우리나라보다 소득 수준이 높은 나라만 여행해 와서 그럴 확률이 매우 희박하지만

 

포르토프랭스같은 곳에서 공인된 의사면허를 가진 사람은 나밖에 없어

 

내가 정말 혼자서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야 한다면.... 

 

CPR도 하고 IV도 적당한 속도로 쏴 주고,

 

massive bleeding에 대한 지혈도 온갖수단을 동원해 가장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그것도 모자라 기관절개술까지 해야 한다면.

 

 

...............................

 

 

'넌 이 새끼야. 집에서 엄마가 바느질하는 것도 못 보고 컸냐?'

 

굉장히 화가 났다.

 

그 욕을 하는 사람한테라기 보다는 내 자신에게.

 

Suture.

 

laceration의 깊이와 범위를 보고 직접할 건지 의뢰할 건지를 결정한다.

 

그리고 내가 하게 된다면 verbal로 anesthesia를 한 후에

 

(안 아프다고 최대한 강조하며 확신에 찬 표정짓기)

 

니들홀더를 절대 이용하지 않고 스태플러로 신속하게 찝어 버린다.

 

내가 사는 방식이 이때까지는 통해왔고,

 

surgical part엔 관심이 없으므로 그렇게 살기로 다짐까지는 아니지만 묵시적 용인 상태였던 것 같다.

 

................

 

이런 마인드에 대한 자각없이 뒤늦게 텍스트북들을 섭렵하며 난 훌륭한 의사로 성장해 가고 있다고 자부해 온 나.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지만 제대로 안습인 부분은 정말 많기에..더 배워야 하고..그러기 위해선 더 깨져야 하고..

 

더 참아야 하고(이게 젤 어렵다.)

 

선생님이 이강희의 난을 일으키고 싶지 않으시다면 무조건 참으셔야 되요.

 

companion의 말.  

 

 

####

prn으로 친구를 찾는 것.

 

이런 태도에 굉장히 분노를 느끼지만 사실 나 역시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다른 게 있다면 그렇게 누가 날 찾아도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 정도.

 

나는 왜 왕따인가?

 

태어나서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지만,

 

내가 진정한 왕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기본기.

 

중2때 한방감인 친구가 있었다.

 

물론 때린 적도 없지만 작은 체구에 비해 주먹이 굉장히 세단 소문이 있었다.

 

(사실 인상과 마른 체구 때문에 큰 키임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간혹..

 

봐 주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저쪽에서 주먹을 날리는 걸 잡아채고 넘어뜨리는 수준이었다.

 

운동신경이라기보다는 주먹을 무서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체력장의 제자리 멀리뛰기는 정말 꽝꽝이었지만

 

달렸다가 뛰는 건 단연 최고 수준이었다.

 

50명 가량 되는 친구들 중에 2위를 기록했는데,

 

그 친구가 체육 교사에게 내가 디딤판을 잘못 밟았다고 얘기해서 내 기록은 무효가 됐다.

 

맨날 큰 키로 제대로 운동을 못 하는 나를 못마땅하게 보는 시선을 갖고 있어서 그날도 제대로 본 게 맞냐고 따지고 싶었다.

 

농구를 접은 지 5년이 넘었고 어디서 농구 잘 한다는 얘기를 한 번도 못 들어 봤지만,

 

내 레이업에 대한 교사의 악평을 그대로 나한테 전해주기도 했다.

 

농구를 정말 못 했지만,

 

큰 키와 빠른 달리기를 이용해 농구를 하면서 그래도 꾸준히 늘어갔다.

 

(릴레이에서도 대역전극을 연출한 건 나와 젤 빠르다고 소문난 욱환이 두 명이었는데,

 

그걸 칭찬해주는 친구는 단 한명 뿐이었고 모두가 몇 주 동안 욱환이 얘기만..)

 

그때 나를 정말 잘 챙겨주던, 유난히 운동신경이 좋은 한 친구가

 

내 농구에 정면으로 태클을 걸어 왔다.

 

역시 또 한번 이유 없이 고추가루를 뿌리는 부류라고 생각했지만,

 

그 친구의 농구는 환상적인 수준에 준했기 때문에 뭐라고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

 

그 친구가 내게 농구를 가르켜 주겠다며

 

일단 드리블을 해 보라고 했다.

 

강습 첫날부터 문제가 바로 보였다.

 

나는 공을 앞에다 놓고 공만 쳐다보고 드리블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앞에 수비가 서 있으면 바로 공을 잡고 패스를 하거나 무리한 슈팅을 시도해야 했다.

 

내가 유독 올코트 플레이에만 좀 강하고 좋아하는 이유가 확실히 드러난 셈이다.

 

(그 친구가 웃으면서 가만히 서 있는 자기를 왜 못 피해가냐고 얘기해 주지 않았다면 문제가 뭔지 몰랐을 것이다.)

 

공을 옆으로 튀기며 상대를 봐 가며 드리블을 하는 것.

 

이게 가장 핵심이었고,

 

슈팅 때의 위치 선정. (백보드도 제대로 이용하면 효과적이라고 쪽팔려하지 말라고 얘기해 줬다.)

 

무거운 농구공을 무서워하지 말 것.

 

여러 가지 기본기만 좀 배웠는데도 확실히 달라졌고,

 

못 하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확실히 주위 아이들에게 많이 늘었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

 

거의 20년이 지나 비슷한 예로 이제와서야 내 당구의 치명적 결함도 고마운 약사님 덕에 알았다.

 

일단 불안정한 큐거리. 자세.

 

타격 부위에 따라 공이 도는 각은 엄청달라진다는 것.

 

(이건 평생 휘누리 정도로만 생각하고 내가 당구를 즐기지 않기 때문에 배울 일이 없다 생각.)

 

입사각과 반사각만 생각하며 치던 내가 이제는 점프샷을 즐긴다.

 

(물론 드라마틱한 재능이나 진전은 없고^-^)

 

....................

 

모든 게 수신부터다.

 

기본기를 갖추라는 얘기다.

 

이걸 우습게 생각해서 발전이 없었던 거다.

 

어렵지만 상당히 쉬운 문제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6.12  (0) 2010.06.13
6.11  (0) 2010.06.11
11.11  (0) 2009.11.12
5.14  (0) 2009.05.14
5.4  (0) 2009.05.06